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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종로] 운현궁 방문 후기
    리뷰/여행 2021. 9. 2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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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안국역 쪽으로 걷는 중에 운현궁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는 안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운현궁. 건물 담만 보다가 이번에는 직접 내부를 살폈습니다!

    운현궁 내부에서

    처음 운현궁으로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바깥에서보다 느낌이 좋았습니다. 밖에서 운현궁 쪽을 볼 때는 홀로 떨어져 있는 외딴 고건축으로 느껴졌는데, 안에서 바깥을 보니 주변 건물들과 큰 나무들과 어우러져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1. 운현궁 소개 및 약도

    운현궁은 조선 26대 왕인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곳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에서 10여 년간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정치를 했습니다. 고종 1년에 노안당과 노락당을 지었으며, 고종 6년에는 이로당과 영로당을 세웠습니다. 규모나 격식, 평면 모양으로 볼 때, 사대부 집이라기보다는 궁궐 내전에 가깝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 이재면을 거쳐 손자 이준용에게 상속되었으나, 한국전쟁 후 상당 부분 팔리면서 운현궁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운현궁 안내 팜플릿을 참고하였습니다. 약도는 위와 같고, 궁 치고는 아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수직사

    정문으로 들어가니 우측에 있는 수직사가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수직 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하던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당시에는 운현궁이 넓었고, 흥선대원군 권력이 막강해서 궁에서 파견된 경관과 관리가 많았다고 합니다.

    3. 노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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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직사를 보고 발걸음을 옮기면 자연스럽게 노안당을 보게 됩니다. 노안당은 운현궁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쳐였습니다. 노안의 의미는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규모는 정면 6칸, 측변3칸이고 공간 구성과 깔끔한 목조 구조, 세부 기법은 궁궐에 버금가는 품격을 보여줍니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좋았는데, 계단이 좀 높아서 오르내리기 힘들었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우리보다 키가 작았을 텐데 어떻게 오르내리고 다녔나 싶습니다.

    노안당 뒷편으로 가보니 이쁜 공간이 나와서 좋았습니다. 수평방향으로 펼쳐진 한옥과 높게 뻗은 나무의 조화와 색감이 아름다웠습니다.


    4. 이로당

    뒷편길로 쭉 걸어 나와 문 하나를 건너니 이로당이 보였습니다. 이로당은 안채로 쓰였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과 여흥 민 씨를 의미하는 말로 이로당이라 지었습니다. 1869년 뒤늦게 지었고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로 평면은 사각형입니다.


    5. 노락당

    노락당은 이로당과 더불어 운현궁의 안채로서 노안당과 같은 해인 1864년에 지었습니다.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은 일자형인데,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을, 앞뒤로 툇간을 둔 궁궐건축 평면구성을 보여줍니다.
    복도각을 통해 이로당까지 연결한 방식은 운현궁의 특징입니다.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익공 장식을 하여 가장 높은 위계를 드러냅니다. 궁궐건축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지었습니다. 1866년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노락당에서 가례를 올린 걸로 유명합니다.


     

    6. 마치며

    이렇게 전반적으로 둘러본 후 나왔습니다. 한 20-30분 정도 코스였습니다. 이외에도 유물전시관과 야외에 역사에 관련된 사실을 전시한 공간이 있어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기를 돌아다니며,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은 넓고 좋은 곳에서 살았구나 싶었는데, 지금 운현궁이 예전보다 많이 규모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얼마나 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집은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이고, 이는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는 사실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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